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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경선 칼럼]"행복주택 결사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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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여기 서명 좀 해 주세요." 며칠 전 일이다. 아파트 같은 동에 살고 있는 한 아주머니가 종이와 볼펜을 내밀며 동ㆍ호수와 이름을 적고 사인을 해 달라고 했다. 남편은 가끔 아파트 흡연구역에서 함께 담배를 피우는 '끽연 동지'다. 해서 부인과도 '안녕하세요' 정도의 인사는 나누는 터다. 그렇다고 허물없이 말을 주고받는 사이는 아니다. 그런데, 정색을 하고 불쑥 서명을 부탁한다? 무슨 일인가.

사연은 이렇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경의선 가좌역 옆 K아파트다. 그의 말인즉 정부가 가좌역 철도부지에 행복주택을 짓는다고 하는데 왜 가만히 있느냐는 것이다. '싸구려 임대주택'이 들어서면 교통 체증에 주거 환경이 나빠져 '우리 아파트' 값이 떨어질 게 뻔하지 않느냐. 행복주택을 막아야 한다. 반대 서명을 해서 주민의 뜻을 알려야 한다. 그러니 댁도 동참하라, 그런 얘기다.
박근혜정부의 핵심 주거안정 공약인 행복주택 사업이 시작부터 삐걱거린다. 행복주택은 철도부지와 유수지를 활용해 노인과 신혼부부, 사회 초년생, 대학생 등에 작은 임대주택을 주변 시세보다 싼값에 공급하는 사업이다. 저소득층의 주거안정을 돕는 것은 물론 중산층이 거주하는 도심지역에 서민도 함께하는 공동체로서, 사회통합을 꾀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

그런데 해당 지역 지방자치단체와 주민의 반대가 심하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5월 서울 오류, 가좌, 공릉, 경기 고잔 등 4개 철도부지와 서울 목동, 잠실, 송파 등 3개 유수지 등 7곳을 시범 사업지구로 선정했다. 시범지구 7곳 가운데 가좌지구를 뺀 6곳이 취지에는 찬성한다면서도 반대 의견서를 냈다. 서울시의회도 지난 12일 '행복주택 일방추진 중단 촉구 결의안'을 가결했다.

반대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사업지를 주민과 자치구의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했다는 점을 든다. 타당한 면이 있다. 그러나 '지역 이기주의'도 간과할 수 없다. 목1동의 경우 인구과밀화와 교통대란, 유수지 해체로 인한 안전성 문제 등을 내세운다. 속내는 '교육특구' 이미지가 훼손되고 집값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작용했다는 게 중론이다. 다른 곳도 사정은 비슷하다. 겉으론 교통난 등 주민 불편을 앞세우지만 지역 슬럼화, 부동산 가치 하락을 걱정하기는 매한가지다.
유일하게 반대 의견서를 내지 않은 가좌지구는 어떤가. 정부는 가좌역 철도부지에 650가구를 지어 대학생들에게 공급할 계획이다. 선로 위에 데크를 씌워 철길로 나뉜 서대문구 남가좌동과 마포구 중동, 성산동을 잇는 브리지 시티를 만든하고 한다. 주민은 대체로 대학생이 기숙사처럼 이용하는데 슬럼화할 이유도, 집값이 떨어질 일도 없을 것으로 본다.

소비성향이 높은 대학생들이 오면 인근 모래내 시장 등 상권에 도움이 되고 철도로 나뉜 두 지역이 데크 브리지로 연결되는 등 득이 더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때문에 K아파트보다 단지가 훨씬 큰 H아파트나 P아파트, 또 다른 H아파트 등에선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반대 서명에 동참하라는 말에 적잖이 당황한 까닭이다. 그래도 반대하는 주민을 막을 수는 없다. K아파트 정문엔 지금 '행복주택 결사반대!!!' 현수막이 걸려 있다.

정부가 주민의 반대를 '지역 이기주의'로만 치부하고 사업을 밀어붙이면 갈등만 더 커진다. 합당한 의견은 수용해 임대주택 물량을 축소하는 대신 공원이나 도서관 등 커뮤니티 공간을 확대하는 대안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안 된다는 생각도 바람직하지 않다. 집을 소유와 재테크의 대상으로 여기는 한 서민용 임대주택 정책은 자리 잡기 어렵다. 반대에 앞서 찬성 의견도 귀담아듣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어경선 논설위원 euh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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