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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안도현의 '스며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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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게가 간장 속에/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는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더 바닥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어찌할 수 없어서/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한 때의 어스름을/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불 끄고 잘 시간이야

■ 자비(慈悲)의 뒤 글자는 슬픔(悲)이다. 사랑하는 일이 왜 슬픈 것일까. 타인의 슬픔을 감정이입하기 때문이다. 함께 아파할 수 있는 그 마음이야말로 사랑의 핵심이라는 걸, '자비'라는 말이 보여 준다. 이 시를 읽고 더 이상 간장게장을 먹을 수 없게 되었다는 이도 있었다. 그 독자 속에 들어앉은 것은 꽃게를 달게 발라먹는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배 속에 수많은 알을 품고 있는 꽃게 어머니의 마음이다. 등판에서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제 몸의 새끼가 다칠까 꿈틀거리며 버둥거리는 그 마음은, 생명의 깊은 본능 같은 게 아니겠는가. 우리가 다 죽어 가는 꽃게가 되었을 때에야, 저 힘없고 낮은 목소리 속에 숨은 뜨거운 사랑을 들을 수 있다. 두려워하는 자식들을 다독이며, 자장가를 부르는 최후의 어머니를 볼 수 있다. 나날이 수많은 생명들을 죽여 입속에 넣어 가며 살아가는 인간이, 어찌 일일이 가엾은 소와 돼지와 닭의 아픔을 감정이입할 수 있으랴마는, 아주 가끔씩은 이런 통증을 느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사람이지 않겠는가.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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