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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철의 인사이드스포츠]'그 시절 전세기만 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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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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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축구협회가 전세기를 띄운다. 날짜는 6월 5일(이하 한국시간), 탑승객은 국가대표 선수단이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6차전 레바논 원정경기를 마치고 돌아올 선수들의 피로를 최소화하겠단 심산이다. 한국은 레바논전에 이어 11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우즈베키스탄과 7차전을 벌인다. 공교롭게도 베이루트~인천 직항 편은 없다. 아랍에미리트연합의 두바이를 경유하면 선수들의 컨디션에 혹여 문제가 생길 수 있어 내린 결정으로 보인다.

운동선수들의 전세기 이용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축구의 경우 이번처럼 일주일 정도의 간격으로 원정과 홈경기가 이어질 경우 전세기를 활용하곤 한다. 글쓴이도 몇 차례 전세기를 탔었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 때 선수단과 함께 탑승한 비행기는 서해 공해상으로 나간 뒤 북한을 오른쪽으로 보면서 북상했다. 그 뒤엔 왼쪽으로 기수를 돌려 베이징 서우두국제공항으로 곧장 날아갔다. 당시는 한·중 수교 전이어서 직항편이 있을 리 없었다. 이듬해 아시아사이클선수권대회 취재 때는 김포국제공항에서 출발해 홍콩~톈진을 거쳐 베이징에 도착했다. 두어 시간이면 갈 곳을 거의 하루 종일 이동했다. 선수들은 지친 몸으로 사이클 바퀴 등 경기 용품을 챙겨 숙소로 이동해야 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선수단 본진 전세기에 동승한 글쓴이는 일등석에 앉는 예상하지 못한 호사를 누렸다. 이륙 전 기내 사무장의 “취재진 가운데 차장급 이상은 2층(일등석)으로 자리를 옮기세요”라는 안내방송 덕이었다. 글쓴이는 당시 차장급으로 진급한 지 반년이 채 되지 않았다. 선수들은 14시간이 넘는 비행시간을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편하게 보냈다. 글쓴이는 잽싸게 기장을 인터뷰해 바르셀로나 도착과 동시에 단독 기사를 송고했다. 한국 체육사에 나오는 첫 국적 전세기는 1956년 멜버른 올림픽 때 띄운 대한국민항공사(KNA)다.

그런데 전세기도 전세기 나름이다. 1964년 고 박정희 대통령은 국적기가 아닌 루프트한자 전세기를 타고 서독을 방문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남의 나라 항공기를 타고 외화를 벌기 위해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를 만나러 가는 심정은 어땠을까. 당시 재독 한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참석자들이 눈물을 쏟은 일화는 50대 후반 이들에게는 가슴 아린 기억으로 남아 있다. 글쓴이는 그 시절 그곳에서 힘들게 살다 자리를 잡고 사는 분들을 1987년 세계유도선수권대회를 취재하며 에센과 쾰른 등지에서 만났다. 그들은 작은 숙박업소를 경영하거나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전세기는 당연히 나라의 경제력과 연관이 깊다. 1948년 제14회 런던 올림픽은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나선 뜻 깊은 대회다. 당시 축구, 농구, 역도 등의 국가대표 선수들은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이동해 그곳에서 배를 타고 요코하마로 건너갔다. 다시 홍콩까지 여객선으로 이동한 선수단은 다시 그곳에서 여러 차례 비행기를 갈아탄 끝에 런던에 당도했다.
1954년 6월 제5회 스위스 월드컵에 출전한 국가대표 선수단의 여정 역시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6월 10일 미군 비행기 편으로 서울(여의도공항)을 떠나 일본에 도착했는데 유럽행 항공권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항공사를 찾아갔으나 예약을 하지 않아 출발 일정이 불확실하단 통보를 받았다. 선수단은 일본축구협회의 협조로 운동장을 빌려 훈련하며 항공편을 기다렸다. 하지만 6월 16일 개막일은커녕 헝가리와 첫 경기를 하는 6월 17일에도 도착을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 훈련은 제대로 될 리 없었다.

그런 와중에 6월 13일 방콕에서 떠나는 영국행 비행기가 있단 연락이 왔다. 문제는 방콕까지 가는 데 필요한 항공편이었다. 6월 11일 출발하는 비행기의 좌석이 9개밖에 없었다. 선수단은 다행스럽게도 6월 12일 비행기에 11개의 좌석이 남아 후보 선수 9명을 먼저 출발시키고 주전 선수 11명을 이튿날 이동시켰다. 그런데 선수단은 단장을 포함해 총 22명이었다. 나머지 두 자리는 일본을 여행하고 있던 영국인 신혼부부가 “월드컵에 항공권이 없어서 출전하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자신들의 일정을 늦춰가며 양보한 덕에 해결할 수 있었다.

이후 경기 결과는 열혈 축구 팬이면 모두 알 것이다. 헝가리전 0-9, 터키전 0-7. 머나먼 유럽 원정길, 그 시절에 전세기를 띄울 수만 있었다면...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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