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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철의 인사이드스포츠]‘올림픽 퇴출’ 레슬링, 무엇이 문제였나

최종수정 2013.02.18 07:05 기사입력 2013.02.18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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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정재훈 기자)

(사진=정재훈 기자)


1988년 서울올림픽 레슬링 경기는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에 이어 또 한 번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국군체육부대 상무체육관에서 펼쳐졌다. 종목별 메달리스트가 가려진 9월 20일 등 엿새 동안 체육관에선 태극기가 쉴 새 없이 올라갔다. 한국은 한명우(자유형 82kg급)와 김영남(그레코로만형 74kg급)의 금메달을 비롯해 은메달 2개, 동메달 5개를 따냈다. 일본(금 2 은 2)과 미국(금 2 은 1 동 3) 등을 제치고 소련(금 8 은 4 동 3)에 이어 이 종목 2위를 했다.

한국, 미국, 러시아(옛 소련), 일본 등은 지난 12일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집행위원회에서 레슬링이 2020년 하계 올림픽(후보 도시 이스탄불 도쿄 마드리드) 25개 핵심 종목에서 빠지면서 깜짝 놀란 대표적인 나라들이다.
이들 나라들은 서울대회뿐만 아니라 역대 올림픽 레슬링에서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 한국이 올림픽 레슬링 종목에서 처음 메달을 딴 1964년 도쿄대회에서 일본은 레슬링에서만 금메달 5개와 동메달 1개를 획득했다. 당시 일본의 종합 순위는 3위(금 16 은 5 동 8)였다.

도쿄올림픽 자유형 52kg급에서 은메달을 따낸 장창선은 최근 글쓴이와 만나 요시다 요시카츠와 금메달을 놓고 겨뤘을 때 “이길 수 있단 자신감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당시 레슬링 대표선수들은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일본에 전지훈련을 떠났다. 메이지대학 등 주로 대학 선수들과 겨뤘는데 각 대학에 국가 대표급 실력을 지닌 선수들이 수두룩했다고 한다. 선수층에서 한국과 비교할 수 없던 수준이었단 이야기다.

20여년의 세월이 흘러 한국은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레슬링 강국으로 성장했다. 서울올림픽 기간 상무체육관에선 연일 한국 선수들의 선전이 펼쳐졌다. 이때 관중들이 보지 못한 재미있는 경기가 있었다. 예정된 경기가 모두 끝나고 각국 기자들이 기사를 작성하고 있을 때면 어김없이 번외 경기가 열렸다. 자원봉사자들이 매트에 올라 옆 굴리기, 안아 넘기기, 목 감아 돌리기 등 조금 전까지 지켜본 선수들의 기술을 따라하며 자기들끼리 ‘열전’을 벌였다. 기자석 여기저기서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습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사진=정재훈 기자)

(사진=정재훈 기자)


일반인이 흉내 수준이라도 레슬링을 하는 것을 본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아직 완전히 올림픽 무대에서 밀려난 건 아니지만 레슬링이 퇴출 위기에 놓인 까닭 가운데 하나는 접근성이었다. 같은 격투기 종목으로 올림픽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입지를 확보하고 있는 유도와 복싱은 선수가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도장을 찾아가 운동할 수 있다. 태권도는 더할 나위가 없다. 유도는 체육 과목으로 가르치는 학교도 있다. 안타깝게도 레슬링은 그렇지 못하다.

태릉선수촌이 생기기 전인 1950~60년대 서울에서 레슬링을 지도받을 수 있는 곳은 중구 초동에 있던 한국체육관, 딱 한 곳이었다. 1956년 멜버른 대회에서 건국 이후 처음으로 올림픽 은메달을 획득한 복싱의 송순천, 앞에서 언급한 장창선 등이 이 체육관에서 기량을 갈고닦았다. 이곳에서도 일반인들은 취미삼아 레슬링을 배우지 않았다. 선수생활을 하려는 젊은이들만 모여들었다.

레슬링이 퇴출된 또 다른 이유는 지나치게 자주 바뀌는 경기 규칙과 방식이다. 꾸준히 취재하지 않으면 바뀐 경기 방식을 숙지하지 못해 국제 대회에서 기자들이 오보를 낼 정도다. IOC 내부의 ‘정치적인 논리’로 근대5종 대신 레슬링이 희생양이 됐단 견해도 있지만 이렇듯 레슬링 스스로 안고 있는 문제도 꽤 있다.

IOC의 레슬링 퇴출 결정은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라파엘 마르티네티(스위스) 국제레슬링연맹(FILA) 회장은 지난 16일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마르티네티 회장은 IOC 집행위원회의 결정에 대해 전혀 낌새를 채지 못하고 있다가 15분 전에야 알았단 사실이 알려지며 더욱 궁지에 몰렸다. 문제는 회장의 사퇴로 끝날 일이 아니란 것이다. 누가 후임 회장이 되든 FILA 구성원들은 고대올림픽부터 이어져 온 레슬링을 올림픽 무대에 보존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올림픽 등 주요 국제대회에서 볼 수 있었던 FILA 관계자들의 권위주의적이고 독선적인 행태도 이번 기회에 함께 바로잡아야 한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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