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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경선칼럼]대선,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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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요, 축제'라고 말한다. 착각이다. 축제인 나라도 여럿 있기는 하다. 하지만 우리 사정은 다르다. 선거가 축제라는 건 '교과서에나 있는 얘기'일 뿐이다. 선거는 결코 축제가 아니다. 죽느냐, 죽이느냐 사생결단의 싸움이다. 후보들이 자신의 정치인생 전부를 걸고 죽기 살기로 싸우는 피터지는 전쟁이다. 지방의원 선거나 대통령 선거나, 큰 선거냐 작은 선거냐의 차이만 있지 전쟁이라는 사실은 같다.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선거가 축제라면 응당 승자와 패자가 활짝 웃으며 어깨동무라도 할 법한데 우리 현실은 그렇지 않다. 후보들 간에 덕담이 오가긴 했다. 문재인 후보는 패배를 인정하고 박근혜 당선인에게 축하의 인사를 보냈다. 박 당선인은 문 후보에게 상생과 협력의 정치를 하자고 화답했다. 후보들은 적어도 선거가 축제로 승화할 수 있음을 행동으로 보여준 셈이다. 그러나 둘로 나뉜 지지자들은 달랐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 사뭇 살벌하기만 하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는 상대에 대한 적대감을 그대로 드러낸 격한 반응들이 쏟아지고 있다. '부정선거, 불법 개표가 이뤄졌다'는 주장은 차라리 나은 편에 속한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사실 관계를 밝힐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개심을 품은 감정적 대립은 어찌하기 참 어렵다. 인터넷과 페이스북, 트위터에서는 대선에서 입장을 달리한 이들 사이에 '나치 치하'니 '정치 걸레'니 온갖 험한 말들이 오가고 '절연'과 '언팔'이 다반사로 이뤄지고 있다. 심지어 대선 다음 날 가게 앞에 '근조(謹弔)' 표시를 붙여놓고 문을 닫은 술집도 있다고 한다. 이 지경인데 축제라니!

세대 간 갈등 양상은 더욱 우려스럽다. 대선 직후인 지난 20일 한 포털사이트에는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를 폐지해 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고 한다. "기초노령 연금제도 폐지를 원한다"는 내용도 있다. 50~60대가 보편적 복지에 반대하는 박 후보에게 표를 몰아줬으니 그들이 누리는 복지혜택을 없애야 한다는 이유에서라고 한다. '더러운 표'를 던졌으니 대접을 받을 자격이 없다며 '버스나 지하철에서 노인들에게 자리 양보하지 않기' 운동을 벌이는 네티즌도 있다. 그렇다고 '철부지 빨갱이'라는 대꾸는 또 무언가. 단순히 선거 후유증이라고 넘어가기엔 그 정도가 너무 과격하고 심하다.

민심은 천심이요, 늘 현명한 선택을 한다는 얘기도 착각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 않고서야 천심이 늘 '나쁜 지도자'를 뽑도록 했을 리 없지 않은가.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천심이 작용한 우리 손으로 대통령을 뽑았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이명박 현 대통령까지 다섯 명이다. 그러나 '그 대통령 뽑기를 잘했다'는 말을 들은 이가 누구인가. 물태우, 외환위기 주범, 대북 퍼주기로 노벨상을 탄 욕심쟁이, 경제를 망친 폐족, 삽질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민심이 천심이 아니라는 건 사실 정치인들이 더 잘 안다. 그들은 선거만 끝나면 '민심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말한다. 민심을 겸허히 받아들인 정당이었다면 정권을 놓치지 않았을 것이요, 국회도 늘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차지했을 것이다. 그런 일은 없었다. 민심을 변덕스러운, 흘러가는 한때의 바람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영남과 호남, 보수와 진보처럼 양극단의 편향된 외눈박이 표심은 빼고.

좋은 방법이 없을까. "승자는 패자를 포용하고 패자는 승복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식의 공자님 말씀은 하나마나다.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별다른 뾰족한 수도 없어 보인다. '노시개'로 5년, '쥐박이'로 5년을 보냈다. 다시 또 5년을 그렇게 보내야 하는가.



어경선 논설위원 euh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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