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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리│나만 듣기 아까운 노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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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리│나만 듣기 아까운 노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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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밝은 이들은 오래전부터 눈여겨보고 있었을 것이다. KBS <개그콘서트> ‘생활의 발견’에서 이별을 놓고 티격태격하는 연인, 신보라와 송준근 사이에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불쑥 나타나는 한 남자 종업원의 존재를 말이다. 그보다 더 눈썰미 좋은 어떤 이들은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불편한 진실’에서 김지민과 함께 매번 손발이 오그라드는 로맨스를 펼치는 남자가 그 종업원과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어떤 상황과 어떤 클리셰에도 완벽하게 녹아드는 <개그콘서트>의 ‘신 스틸러’인 그의 이름은 김기리다. 개그맨이라는 직업이 무색할 정도의 섬세한 연기, 여기에 더해 무대 위에서 자신을 주목하게 하는 영리함은 그가 가진 최대 강점이다. “‘생활의 발견’ 대본을 보면 ‘어서 오세요, 주문하시겠습니까?’ 이렇게 딱 두 마디밖에 없었어요. 함부로 대사를 넣을 순 없으니 송준근 선배와 (신)보라 사이에 딱 서서 바보 같은 표정을 짓는 거죠. 제가 카메라 위치를 좀 잘 보거든요. 하하하.”

장난처럼 쉽게 이야기하지만, 원래부터 능숙했던 건 아무것도 없다. 개그맨으로서 나름의 특기를 발굴하고자 한 노력이 없었다면, 김기리는 사람들에게 기억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사실 끼가 별로 없는 편이에요. 개그를 하려면 안상태 선배나 유세윤 선배처럼 캐릭터 연기를 잘해야 하는데, 저는 특유의 호흡을 잘 못 찾았거든요. 그렇다고 아이디어를 잘 짜는 것도 아니었고요.” 다행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냉철한 판단은 빠른 포기가 아닌 개척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돌파구를 찾은 게 연기였어요. 연극이나 영화 같은 걸 시간 날 때마다 보면서 따라 해본 거죠. 무엇보다 발음과 발성, 호흡 같은 기본기 연습을 많이 했어요. 꾸준히, 몇 년 동안. 이런 말 하기에 아직은 정말 부끄럽지만..... 그러다 보니 어느새 연기력이 아주 조금, 정말 조금 늘어있더라고요.” 그의 이름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차차 생기기 시작한 건 운 때문도, 비교적 훈훈한 외모 덕도 아니었던 셈이다. 이렇듯 성실하게 자신의 영역을 다듬어 가고 있는 그가 음악을 추천하는 방법 역시 다르지 않았다. “한 곡 한 곡 다시 들어보면서 진지하게 썼어요.” 요컨대, 하나하나 성심성의껏 들어봐야 할 것 같은 김기리의 ‘나만 듣기 아까운 노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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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ob Marley, The Wailers의 < Burnin' >
“우연히 밥 말리 CD를 선물 받았었는데 처음엔 듣지도 않았어요. 한 2년 정도는 그대로 처박아뒀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어느 날 동료들이랑 연습을 하면서 장난으로 음악을 틀었는데, 신이 나기도 하고 왠지 위로가 되는 듯한 느낌도 있더라고요. ‘Get up, Stand Up’ 가사를 보면 ‘너의 권리를 위해서 일어나라’는 내용이에요. 흔히들 레게라고 하면 그냥 경쾌하고 신나게 춤출 수 있는 음악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자메이카라는 작은 섬나라에서 치열하게 자라온 음악이고, 그 리듬 뒤편에는 가슴 아픈 사연들이 가득한 거죠. 이렇게 신나는 노래 안에 짙은 감정을 녹여냈으니 밥 말리도 정말 대단한 뮤지션이라고 생각해요. 참, 제가 꼭 가보고 싶은 나라 중 1위가 자메이카에요. 그것도 밥 말리 생일에! 그땐 자메이카 전체가 축제래요.”
2. Vibe의 <3집 Re-Feel>
“바이브의 노래는 다 좋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3집 앨범 <3집 Re-Feel>에 수록된 노래들이 다 대박이었던 것 같아요. 유명한 곡으로는 ‘한숨만’과 ‘그 남자 그 여자 (Feat. 장혜진)’, ‘술이야’ 등이 있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가지 말아요 (Feat. 전인권)’예요. 윤민수 씨와 전인권 씨의 하모니가 이렇게 잘 어울릴 줄은 몰랐죠. 만약에 누군가와 교제하다가 이별을 맞이하게 됐을 때, 이 노래를 불러준다면 정말 가지 못할 것 같아요. 하하하. 전인권 씨의 피처링 중 ‘제발~~~~~~’이라는 부분이 있는데 엄청나게 좋아서 반복해서 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어쩌면 노래를 그렇게 부르실 수가 있는지.... 그냥 감정을 과하게 넣으시는 게 아니라, 밥 말리와 마찬가지로 영혼을 담아서 부르시는 것 같아요. 다들 꼭 들어보시길 권할게요.”

3. Beyonce, Stevie Wonder ‘So Amazing’이 수록된 < So Amazing >
“제가 해군홍보단이라는 행사 부대 출신이어서 음악 하는 친구들을 많이 만났거든요. 루더 밴드로스처럼 유명한 뮤지션들을 잘 몰랐는데, 그때 그 친구들 덕분에 많이 알게 됐어요. 그러면서 접하게 된 게 루더 밴드로스의 추모 앨범인 < So Amazing >이에요. 그중에서도 비욘세와 스티비 원더가 부른 ‘So Amazing’은 군대에 있을 때 제 일과의 시작을 함께 한 곡이죠. 방금도 들어봤는데 여전히 최고의 음악인 것 같아요. 듣고 있으면 일할 의욕이 생기고, 괜히 행복해지는 느낌이에요. 그리고 이 앨범은 짱짱한 뮤지션들이 자신만의 색깔로 좋은 곡들을 부르니까 각각 듣는 맛이 있어서 좋아요. 진짜 맛있는 반찬들이 골고루 나오는 것 같달까요? 이것도 듣고 싶고 저것도 듣고 싶고, 또 이 곡을 들은 다음엔 뭘 들을까 고민하게 돼요.”

4. Yolanda Adams의 < Experience >
“워낙 유명한 노래라 수많은 가수가 불렀지만, 전 욜란다 아담스가 부른 ‘I Believe I Can Fly (Live Version)’가 제일 좋아요. 정말 소름이 쫙 돋는 것 같아요. 이 분의 노래를 들으면서 항상 감동하는 이유는 ‘이렇게까지 잘 부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면, 예전에 <개그콘서트>에서 ‘팀을 위한 길’이라는 코너를 함께 했던 임우일 형이 KBS <해피선데이> ‘1박 2일’에서 강호동 선배가 해병대 친구들을 상대로 씨름을 해서 이기는 걸 보고 운 적이 있거든요. ‘얼마나 노력했기에 저 건장한 친구들을 다 이겨버릴까’ 하고요. 그런 것처럼 저 역시 욜란다 아담스를 보며 자극을 받는 거죠. 분야는 다르지만 나도 사람들한테 저런 감동을 줄 수 있도록 열심히 재능을 키우고 계발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5. 신보라 ‘내 마음 전해요 (엔딩곡)’이 수록된 <조선명탐정 - 각시투구 꽃의 비밀 OST>
“보라는 여자 코미디언 중 정말 친한 몇 안 되는 동료이자 동생이에요. 보라를 보면 타고난 재능이 워낙 뛰어난 친구인 것 같더라고요. 학교에 다니다가 코미디언 공채에 덜컥 붙은 것도 모자라, 누구보다도 빠르게 성장해나가는 중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보라를 보면서 ‘나는 아직 멀었구나. 한참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돼요. 저도 앞으로는 보라처럼 캐릭터를 창출할 수 있는 연습을 하는 게 굉장히 큰 숙제에요. 하하. 아무튼, 보라는 CCM을 해서 그런지 노래 부를 때 감정이 정말 잘 묻어나는 것 같아요. 왜, 노래를 들을 때 편한 소리에 더 끌리게 되잖아요. 자주 듣는 보라의 목소리가 나와서 그런 건지, ‘내 마음 전해요 (엔딩곡)’는 참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곡이에요. 신보라~ 아프지 말고 늘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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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김기리의 존재감이 부쩍 선명해졌다는 건 <개그콘서트>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생활의 발견’에서 단 두 마디밖에 없던 대사는 눈에 띄게 늘었고, ‘불편한 진실’ 속 그를 향한 객석의 환호성은 갑절로 커졌다. 아마 이건 한순간도 개그를 그만두겠다고 생각해본 적 없는 그의 확신에 대한 대답일 것이다. “솔직히 ‘생활의 발견’이란 코너를 하면서 ‘나 없이도 이 코너는 잘 돌아가지 않을까?’하는 허무감을 자주 느끼곤 했어요. 그리고 개그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는데다, 무대 경험도 없는 사람들이 개그를 잘하는 모습을 볼 땐 ‘그동안 내가 해왔던 소극장 생활과 투자했던 긴 시간들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었던 걸까?’하는 실의에 빠진 적도 많았고요. 하지만 포기하겠다는 생각은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장난으로라도 그런 말은 꺼내지 않았고요. 저한테 재능이 없다는 걸 인정하고, 재능 있는 사람들보다 잘하려면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만 하는 거예요.” 그래서 김기리가 개그맨으로서 완성형의 자신을 내보이는 날은 예상보다 빨리 올지도 모른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현재 그가 서 있는 작은 자리에서도 눈을 떼지 않아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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