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성정은 기자]"책을 쓰는 내내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최근 '철가방을 든 천사'를 펴낸 동화작가 엄광용(58ㆍ사진)씨의 말이다. 출간일인 16일을 일주일여 앞둔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 있는 그의 사무실을 찾아 책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김씨는 지난해 9월 오토바이 사고로 목숨을 잃은 그 순간까지, 하루 하루를 '나눔'으로 산 인물이다. 자장면 배달을 하면서 받은 월급 70여만원을 쪼개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후원하던 그는 그릇을 찾으러 다녀오던 길에서 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사고 직후 김씨의 이야기는 순식간에 이곳저곳으로 퍼져나갔다. 그는 당시 '철가방 천사'로 불리며,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엄씨는 "기부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면서도 실천을 안 하는 건 기부 철학을 모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김씨의 삶을 담은 책을 써 더 많은 사람들, 특히 아이들에게 기부에 녹아있는 아름다운 마음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책을 쓰는 과정은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그가 평소에 김씨를 알고 지내던 것도 아니었고, 김씨의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가족도 없었다. 김씨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곤 함께 일했던 중국집 사장과 배달원들뿐이었다.
엄씨는 책을 쓰기 전 김씨가 일했던 중국집을 찾아 그 집 사장을 몇 시간이 넘도록 만났다. 40대 중반의 중국집 사장은 김씨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다.
엄씨는 그렇게 김씨에 관한 이야기 조각을 모아나갔다. 7살에 엄마가 집을 나갔던 일과 12살 때 고아원을 뛰쳐나온 일, 방화미수죄로 교도소에 들어갔던 일, 그 뒤 술에 빠져 지냈던 일까지. 제각각인 조각들을 한 데 엮는 데선 엄씨의 상상력이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책을 쓰는 작업은 김우수라는 인물과 내 철학을 하나로 결합하는 것과 같았다"면서 "실화를 바탕으로 쓰긴 했지만 빈 곳을 채워야 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이럴 땐 김씨라는 인물로 내가 사람들한테 전하고 싶은 말을 넣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 책에 나오는 내용 가운데 김씨가 고아원에서 도망쳐 나온 이유가 왕따를 당했기 때문이라는 부분, 교도소에서 만난 노인과 같이 나무에 물을 주면서 새 삶을 결심한 부분 등은 모두 엄씨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들이다.
엄씨는 '철가방을 든 천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으로 김씨가 교도소에서 '사과나무'라는 잡지를 본 내용을 꼽았다. '사과나무'에서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이야기, 그런 아이들을 후원하는 사람들의 글을 읽은 김씨는 자기도 그 사람들처럼 불쌍한 아이들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한다. 불행한 삶을 살았던 김씨가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 순간이다.
엄씨는 이 책을 다 쓰고 나서 김씨의 뜻을 조금이나마 좇기로 했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방식으로 재능기부를 해보려고 한다"며 크게 웃어보였다.
'철가방을 든 천사'는 엄씨의 이 따뜻한 생각처럼, 김씨의 뜨거운 마음처럼 포근하다. 동화책이지만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권할만하다. 55년 만의 한파가 찾아온 요즘, '철가방을 든 천사'는 얼어버린 마음을 녹여주기에 충분하다.
철가방을 든 천사/ 엄광용 지음/ 북오션/ 1만1000원
성정은 기자 j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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