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팬은 그러나 반사회학적인 이미지도 갖고 있다. 피터팬 증후군이다. 나이를 먹었는데도 성인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피하고 어린이처럼 마냥 보호받기를 원하는 심리. 이같은 사회 부적응자가 늘어나는 것은 세상이 날로 각박해지는 데 대한 반작용이라는 게 공론이다.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박사는 '대기업이 되고 싶지 않은 160가지 이유'라는 글에서 "중견기업이 되면 중소기업 때 받던 지원혜택 160개가 사라지고 대기업 규제만 늘어난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중견기업을 하겠느냐"고 일침을 놨다.
그 결과 한국의 기업 규모 분포는 밑이 넓고 허리가 가는 첨탑형 구조로 굳어졌다. 대기업 비중이 낮고 중견 기업층은 얇으며 소기업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대희 중약 소과(大稀 中弱 小過)'다.
비정상적인 구조를 경고하는 또 다른 데이터도 있다. 한국개발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1994년 중소 제조업체 5만6472개 중 10년 후인 2003년 말 종업원 300인 이상 중견 기업으로 성장한 업체는 75개(0.1%)에 불과하다.
IBK 경제연구소가 우량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는 더욱 충격적이다. 응답 기업인의 55%는 사업 축소나 외형확대 포기 등의 방법으로 중소기업에 남기 위해 노력한다고 답했다. 능력이 있고 성장의 기회가 있어도 기업을 키우지 않겠다는 얘기다. 바로 산업계의 피터팬 증후군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헛다리만 긁는다. 중소기업을 키우겠다며 연일 대기업을 난타한다. 대중소 동반성장, 중소기업 적합업종 등 구호도 요란하다. 물론 문어발식 사업확장 등 대기업이 책임질 일도 있지만 '대기업은 규제하고 중소기업은 보호한다'는 단편적이고 왜곡된 정책 기조가 더 큰 문제다. 병의 뿌리를 그대로 둔채 곁가지(대기업)만 건드리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그런 식이라면 산업계의 피터팬 증후군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이정일 기자 jaylee@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