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②편에서 계속]
허정무 감독은 현직 K리그 감독 중 유일하게 올림픽과 월드컵에서 감독직을 경험한 지도자다. 기쁨도 눈물도 있었다. 2000 시드니올림픽 조별리그에선 역대 최고 성적인 2승1패를 거뒀음에도 득실차에 밀려 8강 진출에 실패했다. 첫 경기 스페인전 0-3 패배가 결정적이었다. 결국 2002 한일월드컵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모든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그 과정에서 상처가 깊었다. 다시는 대표팀 감독을 맡지 않겠다는 다짐도 했다.
승부사의 본능은 감출 수 없었다. 다시 한번 기회가 찾아왔다. 2010 남아공월드컵 대표팀 감독직이었다. '독이 든 성배'란 사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명예 회복이란 단어가 머릿속을 스쳤다. 고심 끝에 지휘봉을 잡았다. 결국 사상 첫 원정월드컵 16강이자 한국인 지도자 최초 16강 진출이란 타이틀을 얻어냈다. 그럼에도 마침내 해냈다는 성취감보다는 아쉬움이 짙게 남았다.
스포츠투데이(이하 스투) 올림픽에서 2승을 하고도 8강에 오르지 못했다. 당시 기분이 어땠나
허정무(이하 허) 후회를 많이 했다. '내가 확실히 경험이 적구나'란 생각을 했었다. 첫 상대인 스페인에 대한 전력 분석도 부족했다. 지금 같으면 큰 어려움이 없었겠지만 당시엔 방법이 없었다. 협회에 요청해도 DVD조차 받지 못했을 정도였다. 스페인에 지고 2승을 했음에도 8강에 오르지 못했다. 우리가 이겼던 칠레는 동메달을 땄고, 스페인은 은메달을 땄다. 사실 그때 스페인은 사실상 우승팀이었다. 푸욜, 사비가 당시 멤버였는데 정말 좋은 팀이었다. 우리가 올림픽에서 2승 올린 것도 처음이었고 운이 없어 떨어진 셈인데 오직 비난만 오더라.
허 그렇다. 그때 스페인이 칠레를 이겼어야 하는데…그렇게 지더라. 그래서 골득실로 떨어졌다. 너무 속상했다. 다시는 대표팀 감독 안 맡겠다는 생각도 했을 정도다. 물론 시간이 지나고 되돌아보니 좋은 경험이었고, 나중에 명예 회복해보자는 생각도 하게 됐지만…그 땐 기분 정말 더러웠다. (웃음)
스투 당시 올림픽대표팀에 발탁해 키운 선수들이 2002 월드컵은 물론이고 2010년까지 활약했다.
허 그때 선수들이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송종국, 김남일, 이천수…이런 선수들이다. 사실 2002년 월드컵 겨냥하는 맛도 있었다. 그래서 키운 선수들인데, 나중에 그 선수들이 실제로 월드컵에서 잘하니까 기분 좋고 뿌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했던 것도 사실이다.(웃음)
◇ 아쉬웠던 월드컵
스투 이후 남아공월드컵에서 성공을 거뒀다. '16강 감독'이라는 것이 자부심도 있었겠지만 요즘엔 좀 부담스럽진 않나.
허 부담보다는 오히려 아쉬움만 남아 있다. 16강 우루과이전 때 우리가 정말 잘했다. 우루과이도 4강 간 팀 아니냐. 그런 팀을 상대로 오히려 경기를 주도하고 찬스도 수없이 만들었다. 결국 결정력 싸움에서 졌다. 요즘 리버풀 수아레즈만 보면 그 생각이 난다. (웃음) 선수들이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아쉬움도 있다.
스투 참 운이 없는 감독이라 생각들 법도 하다.
허 그렇다. 운이 조금 없는 편이었다.(웃음) 팀에서라도 더 좋아질 때가 있지 않겠나. 경기 흐름이라는 게 정말 희한하다. 인력으로 안 되는 것이 있다.
스투 박지성을 처음 대표팀에 뽑은 것도, 주장을 맡긴 것도 당신이었다. 박지성의 대표팀 은퇴를 보며 좀 이르다는 생각은 안 들었는가.
허 이르다는 것보다도 '아…참 아깝다. 더할 수 있는데'란 생각이 든다. 개인적인 상황은 충분히 일리가 있고 이해는 하지만, 대표팀과 대한민국 축구인 입장에서 보면 안타깝다. 그런 선수가 더 해줘야 하는데. 어린 선수들이 더 좋은 기량을 발휘하도록 가르쳐주고, 경험을 나눠주고 도와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렇지만 요즘 맨유에서 뛰는 것을 보면 자랑스럽다. 명지대에서 처음 봤을 땐 참 보송보송했는데..(웃음)
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 spree8@
스포츠투데이 사진 박성기 기자 musict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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