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2012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는 특별하다. 신생구단 엔씨소프트의 합류로 9개 구단이 지명에 나선다. 지난해 78명보다 더 많은 호명이 예상된다. 8월 25일 신세계행 티켓의 주인공은 누가 될까. 스카우트들이 주시하는 그들을 미리 만나본다.
② 나성범, 메이저리그를 홀린 특급 왼손투수
생년월일 : 1989년 10월 3일
체격조건 : 184cm 90kg / 좌투좌타
학력 : 광주 대성초교, 진흥중, 진흥고, 연세대 체육교육학과
“경기 전 형이 ‘홈런을 치겠다’고 했다. 안타나 쳐달라며 웃어넘겼는데 대학 시절 한 차례도 홈런을 허용하지 않은 신정락으로부터 홈런을 때려 깜짝 놀랐다. 약속을 지켜줘서 너무 고마웠다.”
연세대는 8회까지 4-3 점수 차를 유지, 승리를 챙기는 듯했다. 그러나 9회 고려대의 반격은 매서웠다. 이미 140개 이상을 던진 나성범을 끈질기게 괴롭혔다. 홍재호(KIA), 김남석(LG)의 연속 3루타에 김상호의 우전안타가 더 해지며 2득점, 경기를 5-4로 뒤집었다. 나성범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마운드를 내려왔다. 여전히 145km 이상의 구속을 던졌지만 160개를 넘긴 투구 수가 문제였다.
그에게는 기회가 주어졌다. 9회말 1사에서 두 번째 타자로 나섰다. 나성범은 방망이를 여느 때보다 힘껏 휘둘렀다. 하지만 너무 힘이 들어간 탓일까. 타구는 2루수 앞으로 떼굴떼굴 굴렀다. 나성범은 방향에 개의치 않았다. 젖 먹던 힘을 다해 1루로 내달렸다. 타이밍 상 아웃. 하지만 헤드퍼 슬라이딩이라면 세이프도 가능할 것 같았다. 그는 이내 1루 베이스를 향해 온몸을 내던졌다. 결과는 처참했다. 주심의 팔은 한쪽만 움직였다. 아웃. 더 큰 문제는 그 뒤였다. 그라운드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어깨에 통증이 밀려들었다. 부상이었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김동주가 헤드퍼 슬라이딩을 하다 입은 부상 부위와 같은 곳을 다쳤다. 그 뒤로 방망이를 잡을 수 없게 됐다.”
패전투수와 부상. 하지만 더 마음을 아프게 한 건 어머니였다. 우연히 경기장을 빠져나오며 눈물을 훔치는 장면을 목격했다. 처음 발견한 어머니의 눈물. 나성범은 이내 가슴 속으로 맹세했다. 여기서 절대 멈추지 않겠다고. 더 큰 투수가 되어 프로에서 당당히 성공하겠노라고.
이하 나성범과 인터뷰
스포츠투데이(이하 스투) 고려대와의 경기 뒤 형인 나성용과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나성범(이하 나) 다음날 뒤풀이를 위해 호프를 찾았는데 아무렇지 않아 했다. 형다운 모습이었다. 그래서 더 미안했다. ‘형은 나를 승리투수로 만들려고 홈런까지 쳐줬는데 난 뭘 해줬을까’라는 생각에 건물 계단에서 울고 말았다. 원래 눈물이 없는 편인데 그땐 참을 수가 없었다.
스투 광주 대성초등학교 때부터 연세대까지 형과 쭉 야구를 함께 했다. 그 시작도 함께였나.
나 아니다. 형이 먼저 했다. 사실 나는 야구를 할 줄 꿈에도 몰랐다.
스투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나 3학년 때 운동회 계주 경기에서 잘 달려 발탁됐다. 당시 이용기 야구부 감독이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모아놓고 종이를 나눠줬는데 야구부 입단 제의였다. 긴 고민 끝에 유니폼을 입게 됐다.
스투 원래 꿈이 따로 있었나.
나 과학자였다. 레고나 로봇 조립 등을 곧잘 해냈다. 어머니가 ‘재주가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야구부 제의를 거절했다. 하지만 이용기 감독의 구애는 꽤 끈질겼다. 교실을 몇 번이나 찾아와 설득했다. 재능이 있다며 함께 하고 싶다고 했다. 완강히 거절하기 바빴지만 끝내 넘어가고 말았다.
스투 수락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나 이용기 감독이 손에 1만원 지폐 한 장을 쥐어줬다. 어린 마음에 돈을 보니 마음이 흔들렸다. 부모님은 사실을 모른다. 조금씩 몰래 꺼내 맛있는 간식을 사먹는데 사용했다.
스투 형인 나성용이 야구부에 먼저 들어가 혜택을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
나 동기들이 기합을 받거나 매를 맞을 때 거의 열외로 제외됐다. 혜택이라고 여긴 적은 없다. 오히려 불편해 매를 맞겠다고 수차례 자청했다. (잠시 생각하다)진흥중학교 입학 과정에서 혜택을 본 건 있다. 초등학교 때만 해도 실력은 형편없었다. 형은 달랐다. 일찍부터 팀의 4번 타자와 포수를 맡았다. 형 덕분에 겨우 진흥중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스투 형과 배터리로 쭉 호흡을 맞췄는데.
나 다른 포수들보다 편했다. 연세대 입학 뒤 1년 동안 형의 요구대로만 던졌을 정도다. 하지만 언제까지 기댈 수는 없었다. 2학년에 오르며 따로 볼 배합 등을 공부했다. 사인대로 공을 던지지 않으니 자연스레 다툼이 생겼다. 성적도 나빠졌고. 그 부분이 아직도 형에게 미안하다.
스투 연세대 입학 때만 해도 타격 재능이 더 뛰어났다. 투수로서 가능성을 조명 받게 된 계기는.
나 1학년 때 경남 마산에서 동계훈련을 소화했는데 볼 스피드가 갑자기 뛰어올랐다. 139km까지 찍었다. 형이 팀 내 가장 빠른 구속이라며 자신감을 심어줬다. 에이스로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그 말에 탄력을 받고 열심히 훈련을 소화했다. 웨이트 트레이닝, 러닝 등 투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뭐든지 다 시도했다.
스투 성과가 있었나.
나 동계훈련 뒤 첫 경기에서 142km를 찍었다. 며칠 뒤 146km가 나왔고. 자신감이 붙었다. 더 열심히 훈련을 하니 150km 이상을 던질 수 있었다.
스투 2학년 때 구속은 잠시 뚝 떨어졌다.
나 아킬레스건염 탓이다. 러닝을 소화하지 못해 순발력이 둔해졌다. 웨이트 트레이닝만 한 탓에 더 그랬다. 힘은 세졌는데 몸무게는 늘어 이전처럼 피칭을 할 수 없었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 앞에서 무리하게 던진 탓도 있다. 이광은 감독이 자리를 몇 번 마련했는데 아킬레스건염 탓에 제대로 투구를 할 수 없었다.
스투 아킬레스건염을 겪게 된 이유는.
나 무리한 러닝 소화 탓이다. 점프 훈련을 많이 한 게 독이 됐다. 겨울에 입은 부상이라 잘 낫지도 않았다. 괜찮을 거라고 방치한 것도 부상을 악화시켰다.
스투 부상 뒤로 훈련에 보다 신중을 기할 것 같다.
나 상체 웨이트 트레이닝을 거의 하지 않는다. 조금만 해도 근육이 생기는 체질이라 몸이 금방 둔해진다. 물론 하체 쪽은 열심히 단련하고 있다.
스투 2009년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 여부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나 기사를 보고 주위에서 많은 연락을 받았다. 부담이 컸다. 갑작스런 제의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스투 5개 이상 구단의 제의를 뿌리친 까닭은.
나 타지에서 혼자 생활하는 것이 싫었다. 처음부터 마음에도 없었고. 그런데 계속 스카우트들로부터 제의가 오니 나도 모르게 잘 보여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 정도는 던진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었고. 투구에 힘이 들어가니 금세 투구 밸런스가 무너졌다. 아킬레스건염도 발목을 잡았고.
스투 메이저리그 진출 포기에 대한 후회는 없나.
나 조금은 있다. 남들이 가보지 못한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니까. 하지만 준비가 덜 된 상태였다. 지나간 일이라 이제는 신경 쓰지 않는다.
스투 당시 기사에 따르면 몸값이 200만 달러에서 70~80만 달러대로 급격히 추락했던데.
나 사실무근이다. 누군가 이상한 소문을 퍼뜨린 거다. 나는 얼마를 받고 싶다고 말한 적도 없다. 떨어지는 액수 기사가 이해는 됐다. 그들이 가진 동영상 속 투구와 실제 내 피칭이 무척 달랐을 테니까. 당시에는 정말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다.
스투 프로 입단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올해 성적이 매우 중요한데.
나 열심히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밸런스가 흐트러질 때는 1학년 때 모습이 담긴 CD를 재생해 당시 느낌을 가지려고 애쓴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몸이 잘 따라 주지 않는다. 그래도 많이 나아진 편이다.
스투 구속 증강에 따로 노력을 기울이나.
나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제구를 잡는데 더 신경을 쓴다.
스투 올해 춘계리그 성적은 좋지 않았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에 1-2로 패하기도 했다.
나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욕심도 많이 났고. 그래서인지 밸런스가 좋지 못했다. 하지만 다음 대회부터는 자신 있다. 성적이 부진해도 절대 기 죽지 않겠다.
스투 최근 변화구에 변화를 준 점이 있다면.
나 슬라이더는 던진 지 꽤 됐다. 거의 손을 대지 않는다. 커브가 요즘 잘 먹힌다. 투심은 던질 수 있지만 자제하려고 한다. 포수 후배가 공은 좋은데 제구가 좋지 않다고 하더라. 틈틈이 체인지업을 익히기도 한다.
스투 변화구를 터득하는 방법이 궁금하다.
나 잘 던지는 선수들에게 자주 물어본다. 영업비밀이지만 끈질기게 설득하면 다들 털어놓는다(웃음). 방법을 깨달으면 캐치볼을 통해 감을 찾는다. 계속 던지다보면 어떤 타점에서 던져야 하는지 느낌이 온다. 시간이 날 때마다 공을 손가락으로 튕기는 연습도 자주 한다.
스투 훈련을 할 때 참고하는 프로선수가 있다면.
나 김광현이다. 내 스타일에 가장 가깝다. 커브를 다듬을 때 김광현의 고교시절 영상을 많이 참고했다. 가장 영향을 준 건 2007년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4차전이다. 마운드에서 즐기는 표정을 보며 ‘나도 저렇게 던져야겠다’라고 생각했다. 투구 폼도 많이 빌렸고(웃음).
스투 김광현이 가장 좋아하는 투수인가.
나 클리프 리(필라델피아)를 가장 좋아한다. 투구 폼은 다르지만 빼어난 제구력에 반했다. 훈련방법 등을 찾아 적용해보기도 했다.
스투 광주 진흥고 시절 이미 LG로부터 2차 4번(전체 32번)으로 지명을 받았지만 연세대에 진학했다.
나 실력이 부족해 지명을 받을 줄 몰랐다. 그래서 미리 형이 있는 연세대 측과 진학을 마무리 지었다. 지명을 받은 날은 잊을 수 없다. 봉황대기대회 때 숙소에서 설마 하는 마음에 TV를 켰는데 내 이름이 나왔다. 처음에는 방송사에서 사고가 난 줄 알았다. 내가 호명될 줄은 상상도 못했으니까. 그런데 인터넷에서도 내 이름이 발견됐다. 신기하고 놀라웠다. 하지만 연세대와의 사전 약속을 저버릴 수 없었다. 어머니도 만류하셨고. 그래서 더 열심히 노력해 더 좋은 조건으로 입단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스투 어머니의 말을 잘 듣는 아들인가 보다.
나 그간 뒷바라지를 하느라 고생이 많으셨다. 광주에서 아버지와 단체복 생산 일을 하시며 나와 형을 키워내셨다. 어머니는 경기가 있는 날이면 어디든 찾아와주셨다. 일을 하시면서도 아들을 챙기는 노력에 늘 미안했다. 야구를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꾹 참을 수 있던 건 모두 어머니 덕분이다.
스투 2012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가 얼마 남지 않았다. 각오가 남다를 것 같은데.
나 늘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다. 아직 보여주지 못한 게 많다. 드래프트에 관계없이 남은 대학무대에서 후회 없는 경기를 보이겠다. 프로에서도 같은 마음을 가지고 뛴다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
스포츠투데이 사진 박성기 기자 musict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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