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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지하에서 벌인 승부 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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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지에 탄가루가 날리는 연탄공장이 있어도 누구 하나 공장을 이전하라고 머리띠 두르고 항의하는 사람이 없었던 시절이 있었지요. 집에서 공장이 멀어질수록 배달거리가 멀어 가격이 올라가니 말입니다. 그런데 우린 아직도 유연탄을 연간 1억톤 이상 수입해야만 한전과 POSCO의 생산에 차질이 없습니다. 비닐하우스와 서민용 수요만으로 연간 500만t의 석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한 세대 후 상전벽해로 변한 서울 잠실일대의 초고층아파트 단지가 연탄보일러를 사용했던 아파트들이 사라진 자리였다고 누가 상상이나 하겠습니까. 어쨌든 석탄을 캐는 사업은 요즘엔 전형적인 3D업종이지만 당시로는 국내총생산 규모로 비교할 때 오늘날의 반도체나 LCD패널 사업을 하는 것과 같은 위상이었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정부의 주유종탄(主油從炭)정책으로 석탄광산은 사양산업이 돼 하나둘 폐광이 됩니다. 열악한 1차 산업에서 청춘을 불살랐던 1세대 산업 전사들이 직장을 잃고 떠나거나 병들어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자리에 생긴 강원랜드 카지노는 뼈아픈 구조조정의 대가로 생긴 산물이었지요.

한창 투기바람이 불 때 ‘땅은 배반하지 않는다’는 말을 믿고 전국을 돌며 부동산투기를 했던 기업인들 대부분이 큰돈을 벌었지만 그 와중에도 남이 다 가는 그 길을 가지 않고 묵묵히 땅 밑을 파온 기업인이 있었습니다.

김상봉 회장은 이상하리만치 남이 안 된다고 포기하거나 버렸던 광산만을 구입해 생산성을 극대화시켜 성공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작고한 형님(김영생 전 국회의원)과 단 둘이 죽고살기로 지하에서만 승부를 했습니다. 강원도 태백에서 평창을 거쳐 다시 영월로 광구를 옮겼던 것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습니다.
그가 직접 간판을 달았던 광산에서만 전부 86명의 광부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수백m 아래 칠흑 같은 땅속은 그만큼 숨 막히고 가슴 아픈 지옥을 미리 체험하는 삶의 현장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경험상 북한의 경제수준이 우리나라 1970년대 초 수준이란 현실을 직시하고 있습니다. 이산가족상봉이나 금강산관광·개성관광 같은 일회적이고 소비적인 교류보다는 장기적으로 북한 경제수준을 끌어올리고 인민들의 고용에 도움이 될 산업은 풍부한 지하자원 개발에 있다고 강조합니다.

북의 흑연과 석탄처럼 무궁무진한 지하광물을 개발하고 수입해 주는 대신 절대적으로 부족한 북의 전기시설을 개선해 주면 충분히 협상이 되는 문제로 봅니다. 작년까지 광업협회장을 9년이나 연임했던 입장에서 남·북한이 이런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협상을 통해 해결하지 못하는 점을 무척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석탄에서 석회로 광산을 바꾼 후 외환위기란 치명타를 맞아 경영위기를 겪었으나 지인들과 직원들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재기할 수 있었답니다. 그 후 석회석의 무한한 가능성에 착안하고 그걸 가공해 부가가치를 극대화시키는 정밀가공분야의 연구개발에 9년 동안 집중 투자를 하게 됩니다.

기술을 개발하고 공장을 짓는 도중에 2008년 금융위기를 맞아 60% 공정단계에서 공사비 부담이 150억원 이상 추가되는 예견치 못한 상황에 직면합니다. 건설회사가 부도로 넘어가는 와중에 공장을 완공하기 위해 정부부처와 국회와 은행장실을 두드리며 그야말로 피눈물로 호소하며 다녔다고 합니다.

POSCO를 주 거래처로 하는 안정된 기업으로 전국의 40여개 소각장에 연간 1만t의 탈황제를 납품하는 실적이 있고, 무려 240만평이나 되는 알짜 석회석광산을 소유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평가해 주지 않는 금융시스템의 모순을 절감해야 했습니다.

마지막에는 “나처럼 곁눈 팔지 않고 평생 국가경제를 먼저 생각하며 기업을 경영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일갈했다고 합니다. 그동안 맡아왔던 각종 사회단체의 회장 직함만 33개가 넘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요. 여기서 한번 생각해봅시다. 기업인으로서 살아 온 삶의 궤적에 얼마나 자신이 있었으면 감히 그런 폭탄발언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다행히 산업은행측이 진의를 알아주고 투자를 해 위기를 넘깁니다.

김상봉 회장은,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화두를 광업 한 분야에서 증명해 보였습니다. 연간 1000억원이 넘는 매출을 막 넘긴 상태에서 결코 안주하지 않고 50년간 비축한 체력으로 다시 제2의 기업혁신을 작정한 것입니다. 5년 전 1세대 고반응 소석회를 생산하는 충주공장을 건설한데 이어 시험가동 중인 충북 진천의 신축공장은 전기료만 매월 4억원이 나가는 첨단시설로 곧 제품생산을 앞두고 있답니다.

시대를 따라서 회사의 이름도 바뀌어야했습니다. <태영광업>에서 <태영석회>로 다시 <태영 EMC>로 회사명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CEO는 김상봉 회장 그대롭니다. 그는 60대 후반에 창업 50년을 앞둔 시점에서 자신 있게 말하고 있습니다.

“중질탄산칼슘(GCC)은 이번에 우리가 세계최고 수준의 기술을 개발한 것입니다. 외국계 기업이 80% 이상을 점유하던 제지회사에 100% 수입대체를 하고 기술수출까지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시사평론가 김대우 pdik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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