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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넌 아직 덜 익은 고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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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젊은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사무실로 찾아오겠다고 했습니다. 미국 유타주에서 유학을 하고 있는 한국학생이었습니다. 취업하기가 어려우니 무슨 부탁을 하겠지 생각했습니다. 당찬 목소리에 호기심이 간 탓에 선뜻 사무실에서 차 한잔하자는 말을 했습니다.

지난주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28살이었습니다. 인터뷰 전문기자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습니다. 유타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있는 그는 학생 신분(4학년)이었지만 이미 신문기자 경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유학생활을 하면서 유타 코리안타임tm에서 급여도 받지 않으며 기자생활을 익혔습니다. 반기문 UN사무총장을 비롯해 100여명에 달하는 유명 인사들과 인터뷰를 한 경험도 있었습니다. 함지하 라는 학생이었습니다.

26살인데 왜 아직 졸업하지 못했을까 의문이 갔습니다. 알고 보니 그는 가정이 넉넉하지 못한 탓에 때론 아르바이트로 돈도 벌고, 때론 관심이 있는 분야(글쓰기)에 몰입하기도 했습니다. 국내 일간지와 월간잡지 등에 기고를 하기도 했고 자신의 유학경험을 밑천으로 ‘조기유학 캐나다 시골로 가라’는 책을 출간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가 거쳐 온 유학생활을 듣고 보니 대견스러웠습니다. 한편으로는 영락없이 취직부탁일거라는 느낌에 ‘어떻게 대답할까’라는 고민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의외의 부탁이었습니다. 최근에 자신이 출간한 책을 보여주면서 ‘권대우의 경제레터’의 소재가 될 수 없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경제레터를 보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애독자가 됐다는 얘기였습니다.

책을 선물 받은 후 꼬박 하루를 읽어 내려갔습니다. 그가 쓴 책의 제목은 ‘미디엄 레어’(medium rare)였습니다. 미디엄 레어는 아직 덜 익은 고기를 말합니다. 그가 이 책의 제목을 ‘미디엄 레어'로 정한데는 깊은 뜻이 있었습니다.

한 청년은 한국에서 미국으로 유학 온 평범한 청년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청년은 특이한 과거와 현재를 갖고 있습니다. 그는 북한에서 태어나 굶기를 밥 먹듯이 했으며 굶지 않기 위해 시장바닥에서 뒹굴며 청년돌격대란 이름으로 죽도록 노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더 나은 미래가 없을까 생각하며 가출한 어머니를 찾아 두만강을 건넜습니다. 그렇게 특별한 삶을 살던 그는 미국으로 망명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두 청년의 상황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한반도 같은 하늘아래서 태어났지만 그랬습니다. 한 청년은 청운의 뜻을 품고 유학길에 올랐고 한 청년은 살기위해 조국(북한)을 버렸습니다. 두 청년은 유타주에서 만났습니다.

함군은 어느 날 국제난민기구 유타지부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습니다. 솔트레이크시티에 ‘리성’(21살)이란 이름을 가진 소년이 정착하게 될 테니 도와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한국인이 별로 없는 도시였으니 함군에게 전화가 걸려왔던 것 같습니다. 그는 3개월 동안 리성군을 만나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함군은 리성을 만나며 그에겐 작은 격려와 도움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리성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서, 그리고 그와 같은 탈북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무엇을 할까를 생각했습니다. 그에게는 아주 작은 관심, 조그만 불빛도 큰 힘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평범한 유학생이던 함군은 리성의 짧지만 역경으로 이어진 힘들기만했던 인생역정을 기록하기 시작했고 자본주의라는 것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리성은 현재 유타주의 한 드라이크리닝 가게에서 일하면서 영어와 자본주의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어눌한 영어에 대니라는 영어이름을 쓰는 그를 보며 교포가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18살 때 두만강을 건너 북한을 탈출, 이제 21살이 된 그는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새로운 꿈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리성, 너는 아직 덜 익은 고기야. 자본주의 나이 두 살이 갓 넘은 청년이야.”

리성을 만날 때 함군은 심심찮게 이런 농담을 하며 그에게 꿈을 심고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내용을 담아 함군은 최근 ‘미디엄 레어’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28살 한국청년의 눈에 비친 21살 탈북청년의 모습은 모든 것이 놀라울 뿐이었고, 같은 동포로서 그를 도와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미디엄 레어와 다름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리성군을 새로운 시각에서 그린 것이 바로 이 책인 셈입니다.

자신의 앞가림을 하는 것만도 벅찬 것이 유학생활입니다. 더군다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까지 조달해야하는 함군의 경우는 더욱 그랬을 것입니다.

아직 30대가 채 되지 않은 미소년 함군과 대화 하면서 “이런 젊은이가 있으니 한국의 미래는 밝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부모에게 의지하며 자신의 잇속을 먼저 생각할 나이에 자신보다 불행한 처지에 있는 이웃(리성군)을 배려하는 함군을 생각하며 취업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용기를 되찾는 하루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평소 제가 정말 존경하는 박철원 선배께서 보내주신 의미있는 연하장 속 글귀를 추천하며 함군의 인생에도 많은 축복있기를 기원합니다.

“400년 전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에서
‘이룩할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싸워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며 꿈을 예찬했습니다.”

크고 위대한 꿈을 품고, 멋진 꿈으로 세상을 바꾸는 계획을 세우며, 이를 달성하기 위한 열정을 잃지 않으면 2009년 12월에는 “나의 꿈은 이루어졌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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